다산의 글을 읽다보면 200년 전에 했던 말이 왜 오늘에도 이렇게 절실한가에 대해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세계화하지 않고는 살 길이 없다느니, 영어를 잘하는 나라만 선진국이 된다느니, 영어를 잘하고 친미의 생각을 지녀야만 외교활동을 잘 한다는 등, 밖으로만 치닫느라 가까운 내 나라와 자기 자신은 내팽개치고 살아가야만 높은 지위에 오르고 대접을 받는 세상이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먼 데에만 힘을 기울이며 가까운 우리 것은 가볍게 취급하느라 국보1호도 날려보낸 것이 오늘의 우리입니다. ‘무원홀근(務遠忽近)’의 사자성어를 다산은 「지리책(地理策)」이라는 장문의 글에서 명확하게 사용하고 치밀하게 해석을 내렸습니다. “먼 데에만 힘을 기울이고 가까이 있는 일은 홀대하는 것이야 예나 지금이나 일반적인 병폐지만, 유독 우리나라는 너무 심합니다. 온갖 문물제도를 중국에서 모방해왔다해도 도서로 기록하는 데 있어서는 의당 우리나라 일에 밝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밖의 신기함을 탐색하고 연구하기 어려운 것을 연구하기보다는 우리의 국토 안에 있는 가까운 것을 조사해서 실상을 밝혀야만 합니다”라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중국의 산천지리는 중국책을 통해 줄줄이 파악하여 알면서도 내 나라의 국토지리는 까맣게 모르는 당시 학계의 병폐를 분명하게 지적했던 내용입니다. 고구려·신라·백제의 경계와 국토의 영역도 제대로 밝힌 책이 없고, 그 이전의 고대 조선의 영역이나 국토에 대한 명확한 지도하나 없는 당시의 학계 수준에 통탄을 금하지 못하던 다산은, 제대로 국토지리를 연구하고 탐색하여 고대부터 당시까지의 국토와 영역의 변천사라도 알 수 있는 지도의 편찬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시를 지어도 조선시를 짓고, 역사적 사실을 인용해도 내 나라 역사적 사실을 인용할 때에만 시다운 시가 된다고 역설했던 다산. 우리말이나 국어야 어찌되든 관계없이 영어만 잘하면 된다는 요즘의 논리에, 문득 다산의 말씀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어도 잘하고 외국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 그것을 누가 반대하리오마는, 내 나라 말도 잘 알고 사용하며, 내 나라 역사나 국토지리도 제대로 안다면 누가 잡아가나요.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보기를 바라나이다.
박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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